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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8 16:13
  • 수정 2025.04.28 16:32
  • 호수 202505

노동에서 해방해줄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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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LDEN AGE OF HUMANOIDS]

인터뷰①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로봇을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 함께할 ‘동반자’로 본다. 특히 인간을 반복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욱 창의적이고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동반자여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 단순히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로봇이 진짜라는 믿음. 로보티즈의 모든 로봇에는 그가 처음 품었던 꿈과 철학이 녹아 있다.

최기웅 기자
최기웅 기자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가 처음 로봇에 빠져든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 시절 로봇 동아리에서 직접 만든 로봇이 스스로 미로를 탐색해 길을 찾는 대회와 로봇축구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하자, 그는 깨달았다. ‘내가 만든 기계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짜릿한 감정인지를.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김 대표는 여전히 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간의 외형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기능 중심의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이라고 말한다.

로보티즈는 지난 1999년 창업 이후 26년간 로봇에만 천착해온 전문기업이다. 주력 제품은 ‘다이나믹셀’이라고 이름 붙인 액추에이터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구동 모듈 장치를 말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평균 40~50개의 액추에이터가 장착된다. 로보티즈의 다이나믹셀은 테슬라의 휴머노이드인 옵티머스 테스트 모델에 사용되기도 했다. 로보티즈의 기술력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김 대표는 다이나믹셀에 대해 “로봇에 가장 최적화된 액추에이터”라고 소개하며 “올인원 타입으로, 감속기, 모터, 구동, 통신 제어 등 소프트웨어를 담을 수 있는 관절이며, 갖출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듈화돼 있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로보티즈가 선보인 액추에이터는 인공지능(AI) 로봇 팔 등 ‘AI 매니퓰레이터(AI Manipulator)’에도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리더와 팔로어의 개념으로 로봇을 만들기에 적절한 구조다. 리더 로봇은 사람이 조작하는 로봇, 즉 시범을 보여주는 주체다. 물건을 잡는 동작 등을 하면서 AI에게 가르치면, 팔로어는 리더의 동작을 학습하고 따라 하게 된다. 김 대표는 “사람이 리더 로봇의 팔을 움직여 베개 커버를 씌우는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팔로어 로봇은 영상 센서 데이터를 학습해 추후 사람이 없이도 같은 동작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로봇 부품 시장에선 액추에이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산업용 로봇 생태계는 크게 부품, 세트, 인터그레이터(Integrator)로 구분돼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액추에이터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분류돼왔으나 최근 로봇 산업 밸류체인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로봇 손(핸드)에만 50개 이상의 액추에이터가 들어가는 고정밀 제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감속기·모터 같은 개별 부품을 조립하는 기존 방식보다 완성형 액추에이터 단위로 공급받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죠. 특히 작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정밀성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부품 레벨보다 모듈화된 액추에이터 단위의 접근이 더 효율적이라는 분석입니다.”

로보티즈는 국내 로봇 업계에서 1세대 휴머노이드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 2013년 선보인 휴머노이드 ‘똘망’이 대표적이다. 똘망은 2013년(예선)과 2015년(본선)에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기획한 재난구조로봇대회에 참가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재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 개발을 목표로 열린 대회다. 당시 25개 팀이 참여했으며, 이중 절반이 넘는 팀이 로보티즈의 휴머노이드 ‘똘망’ 플랫폼을 사용했다. 또 15개 팀이 로보티즈의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 부품을 활용해 로봇을 만들었다.  

사람처럼 일하는 로봇, AI 워커

최근 로보티즈는 또 다른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였다. 피지컬 AI 기반 작업형 휴머노이드인 ‘AI 워커’다. 로보티즈의 원천기술인 액추에이터 다이나믹셀과 감속기(DYD) 기술이 적용됐으며 해외 AI 기업들의 요구 조건을 수렴해 설계 제작됐다. AI 워커에는 숙련 인력의 동작을 학습해 고난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돼 있다. AI 매니퓰레이터의 확장 형태로, 리더-팔로어 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밀한 동작을 학습하고 이를 반복 수행할 수 있다. 로봇 운용 경험이 없는 사용자도 직관적인 조작만으로 로봇을 구동할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로봇이 취득한 다양한 학습 데이터로 용접, 조립, 검사, 분류 등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작업도 정교하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제품 AI 워커의 특이점은 두 팔은 있지만, 두 다리가 없는 외관이다. 대신,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바퀴를 장착했다. 굳이 다리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바퀴가 더 유용하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이족보행 같은 외형적 요소는 일부 산업이나 구조 환경에서 유리할 수 있지만, 모든 상황에서 최적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바퀴 기반이 더 실용적일 수 있으며, 이족보행일 경우 배터리 문제 등 기술 한계도 여전히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휴머노이드도 시장의 니즈에 따라 형태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휴머노이드의 형태는 ‘상체만 사람을 닮은 구조’인 세미 휴머노이드”라고 설명했다. 팔과 손의 기능이 가장 먼저 실제 업무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AI는 에이전트에서 ‘AI 워커’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처리에서 벗어나 실제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피지컬 AI의 출현을 의미해요. 로보티즈는 그 중심에서 액추에이터를 통해 실질적 구현을 돕고 있습니다. 연구용에서 상용화 단계로 전환되는 시점에 이르렀죠.”

최기웅 기자
최기웅 기자

 MIT부터 딥마인드까지…글로벌 협업 본격화

최근 로보티즈는 글로벌 기관들과 협업해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본격적인 기술 고도화에 나섰다. 구글 딥마인드와 스탠퍼드대학 등은 로보티즈의 액추에이터를 구매해 연구에 활용하고 있으며, MIT와는 한국 정부의 

100억원 지원 아래 5년간의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핵심 과제는 사람의 손과 유사한 촉각·위치 감각을 구현하는 AI 핸드 모듈 개발이다. 로보티즈는 “비주얼 서보잉(Visual servoing·로봇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면서 물체를 따라가거나 조작하는 방식) 기반으로 손이 주변 사물을 스스로 인지하고 조작하는 것이 목표”라며 리더-팔로어 구조와 AI 학습 기능을 탑재한 ‘오픈매니퓰레이터-Y(OM-Y)’의 상용화를 오는 6월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시장 생태계 조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일부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는 방침도 과감히 정했다. 협업과 응용 확장을 위한 전략적 판단에서다. 김 대표는 “하드웨어 공급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은 외부 생태계와 연계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기업인 LG전자와도 협업하고 있다. 최근 LG전자는 로보티즈의 2대 주주로 참여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로봇 사업 영역이 겹쳐 협력이 쉽지 않았지만, 최근 역할 분담이 정리되면서 AI 워커 개발을 중심으로 공동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로보티즈는 액추에이터 기술의 강점을 바탕으로 LG전자와 하드웨어 납품·개발 협의를 구체화 중이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가장 앞선 곳은 미국이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일본이 기계역학 기반의 로봇 기술로 세계를 선도했지만, 현재는 데이터와 학습이 핵심이 된 시대에 접어들며 미국이 가장 앞서 있고, 중국이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이라고 판단했다. 

“중국은 특히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효율적인 데이터 확보 환경을 바탕으로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국은 아직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과 함께 ‘추격자 그룹’으로 분류되죠. 여전히 기술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 대표는 단순히 인간의 외형을 본뜬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본질적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작업 수행이 가능한 피지컬 AI 기술을 고도화해 산업적 활용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손 기능이 미비한 기존 휴머노이드 로봇의 한계를 언급하며, ‘다리보다 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을 가볍게 만들어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며, 궁극적으로는 외형보다 기능이 우선”이라며 “외형 집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단기간에 가정용으로 활용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공장이나 물류 등 산업 현장, 혹은 상업용 서비스 분야에서 먼저 로봇이 쓰이게 될 거란 전망이다. 가정용 로봇은 이보다 한참 뒤에야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SK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500대 기업 중 50여 곳이 로보티즈 제품에 구매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생산 능력의 한계로 일부 물류 대기업에만 우선 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중장기적으로 생산 거점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며 “현재까지는 본사 건물 내에서만 생산이 이뤄졌지만, 수요 증가에 따라 해외 생산기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이 있으면서도 인건비가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눈여겨보고 있다는 귀띔이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케펙스(Capex, 설비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액추에이터 분야에서 대중국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해외 투자 유치도 중요하죠. 궁극적으로는 피지컬 AI 기술을 완성해 인간을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김 대표는 로봇이 “인간이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힘줘 말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해줄 존재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허드렛일을 삶의 신성한 일부로 여길 수도 있지만, 로봇이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로봇이 ‘인간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로보티즈 사옥 1층 전시관에 적힌 문구는 김 대표의 사업 목표와 이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봇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로보티즈는 답합니다. 로봇이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동반자라고. 그것이 로보티즈가 꿈꾸는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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