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정교한 로봇이라도 힘의 세기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무엇인가를 ‘잡았다’는 감각이 없다면 결국 사람과 공존할 수 없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이 기술의 공백을 정조준했다. 센서 가격이 1000만원을 웃돌던 시절, 대학 연구실에서 출발한 에이딘로보틱스는 10분의 1 가격으로 정전용량 기반 센서를 양산해냈다. 이제는 국내외 로봇 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어느 산업 현장에도 ‘손’은 필요하다. 하지만 로봇에게 손의 감각을 부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힘과 토크(회전력)를 측정하는 고성능 센서는 대부분 외산이었고, 가격은 개당 1000만~2000만원에 달했다. 정밀한 접촉이 필요한 작업일수록 로봇은 그저 사람보다 못한 기계에 불과했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연구자들이 있었다. 수년간 축적한 로봇 센서 기술을 산업 현장에서 쓰게 하자는 목표 하나로 뭉쳤다. 지난 2019년 성균관대 로봇공학 연구실에서 땀 흘리던 연구자들은 에이딘로보틱스라는 간판으로 스핀오프에 나섰다. 현재 에이딘로보틱스는 최혁렬 성대 기계공학부 교수와 제자 이윤행 박사가 각자대표 체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윤행 대표는 “연구실 안에만 머물던 기술을 실제 산업에 쓰이게 하고 싶었다”며 “좋은 기술이 있어도 쓰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올해 창업 6년 차를 맞은 에이딘로보틱스는 로봇 센서 전문기업이다. 고성능 센서를 자체 기술로 개발·양산하면서 국내외 로봇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오랫동안 센서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기존 외산 센서들은 대부분 스트레인 게이지(Strain Gauge)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방식은 아주 얇은 박막 형태의 게이지를 센서에 수작업으로 부착해, 변형에 따른 저항값 변화를 측정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제작 공정이 까다롭고 가격이 비싸며, 외부 충격에 약해 내구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전용량(Capacitive) 방식의 센서를 개발했습니다. 두 개의 전극만으로 힘과 토크를 측정할 수 있고, 비접촉 방식이기 때문에 충격에도 강하죠. 구조도 단순해 대량생산이 가능합니다.”
에이딘로보틱스가 개발한 힘토크 센서는 협동 로봇의 관절이나 손목, 손가락 끝 등 좁은 부위에 장착돼 섬세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든다. 로봇이 다루기 어려웠던 비정형 물체나 연성 소재도 다룰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기존에는 가격 장벽 때문에 도입이 어려웠던 현장에도 우리 제품이 들어가게 됐다”며 “10분의 1 수준의 가격경쟁력 덕분에 국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고, 새로운 활용처와 애플리케이션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0분의 1 가격’이 만든 시장의 변화
경기 안양에 자리한 에이딘로보틱스 5층에는 휴머노이드 핵심 센서 3종과 로봇 핸드 등이 전시돼 있었다. 초소형 힘토크 센서는 로봇의 손가락 끝 등 좁은 부위에 장착해 사람처럼 섬세한 물체 감지, 힘 조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쉽게 깨질 수 있는 계란이나 얇은 명함도 조심스럽게 집어들 수 있다. 3축 힘센서는 이족보행 로봇의 발바닥에 들어가는 센서다. X, Y, Z 축 방향의 힘 측정이 가능하며, 로봇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설 때 중심 유지를 도와준다는 설명이다. 텍타일(촉각) 센서는 손바닥 면적에 부착해 접촉 감지 여부를 알 수 있다. 힘토크 센서는 ‘얼마나 센지’를 측정하고, 텍타일 센서는 ‘닿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핸드는 로봇 손가락 끝에 장착된 초소형 힘토크 센서가 핵심 기술이다. 글로벌 경쟁사 제품보다 소형화한 센서가 에이딘로보틱스만의 차별점으로, 해외 바이어 수요도 크다는 전언이다. 이 대표는 사람 손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는 로봇 핸드가 얇은 과자를 집도록 직접 작동해 보였다. 과자가 부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세 손가락을 활용해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용자가 글러브를 끼고 손을 움직이면 로봇 핸드가 실시간 따라 움직이는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에서 세 가지 제품을 선보였는데,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원격 조작이 가능한 로봇 핸드였다”며 “다양한 물체를 정교하게 잡을 수 있어 현장 도입 문의가 많았고, 실제 고객사와의 연결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로봇 핸드는 현재 주로 연구개발 용도로 판매되고 있다. 고객 대다수가 인공지능(AI)이나 휴머노이드 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진이다. 이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사람처럼 작업하려면 ‘손’이 필요하다. 사람이 쓰던 작업 공간과 도구를 그대로 활용하려면 로봇도 사람 손처럼 정교한 동작을 해야 한다”며 “이런 이유로 인간형 핸드에 대한 연구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우리는 이에 맞는 로봇 핸드를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휴머노이드는 협동 로봇보다 훨씬 더 다양한 물체와 상호작용해야 하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죠. 인간이나 사물과의 물리적인 인터랙션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따라 센서 수요도 훨씬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휴머노이드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힘토크 센서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계속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에이딘로보틱스는 힘토크 센서를 단순한 부품으로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한 협동 로봇 기반의 솔루션까지 직접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샌딩, 그라인딩, 폴리싱 등 정밀 가공 작업에 특화된 자동화 솔루션이다. 이 대표는 “기존에는 작업자가 장시간 물리적인 힘을 들여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했던 공정이지만, 우리 센서 기술을 이용해 로봇이 힘을 정밀하게 제어하며 자동화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센서 가격과 정밀 제어의 어려움이라는 기존 한계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센서와 관련된 원천기술을 100% 자체 보유하고 있으며, 관련 특허도 30건 이상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양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수출도 꾸준히 이어가며 매출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빌리티’를 갖춘 로봇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로봇 개’로도 불리는 사족보행 로봇이다. 발전소나 제철소처럼 넓은 공간을 이동하며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물리적 조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글로벌이 주목, 유럽 14개국 진출 중
이 대표는 “우리 사업 영역은 부품, 솔루션, 플랫폼 등 세 분야로 나뉘며, 현재 매출 비중은 부품과 솔루션·플랫폼이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전체 매출 중 약 20%는 해외에서 발생하며, 미국과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초소형 센서의 수요가 특히 높다”며 “현재 14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독일 전시회 등에도 꾸준히 참가해 글로벌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지난 2022년 45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에 이어 2024년에는 150억원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마쳤다.
“지난해 시리즈 B 투자에서 총 150억원을 유치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리드 투자자로는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참여했고, 전략적 파트너로는 우리 로봇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삼성넥스트, GS벤처스, 포스코기술투자, CJ대한통운 등 네 곳이 함께했습니다. 이 기업들은 단순한 투자뿐만 아니라, 우리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합니다. 또 시리즈 A 때 참여했던 투자사들도 모두 후속 투자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성과는 우리가 ‘로봇 부품’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확장성이 큰 사업 분야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어떤 완제품 로봇이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부품 사업은 다양한 로봇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성장 가능성이 크죠. 더불어 우리는 연구실 기반의 깊이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석박사급 인력이 전체 인원 44명 중 28명에 이를 정도로 연구개발(R&D) 중심의 조직입니다. 이러한 기술력과 인재 풀은 투자자들에게 강한 신뢰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출도 매년 100% 가까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런 가시적인 성과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에이딘로보틱스의 목표는 더 많은 로봇 제조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우리 제품이 탑재된 협동 로봇들이 양산돼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고,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휴머노이드 생태계에서도 우리가 하나의 부품 기업으로서 생태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매출 역시 전년 대비 100%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휴머노이드 기술 진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이른바 ‘8경 시장(약 8경6000조원)’이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잠재시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글로벌 노동력의 약 10%가 휴머노이드에 의해 대체될 경우의 시장 규모를 의미합니다. 자동차산업보다도 더 큰 규모이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죠.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대표는 장밋빛 전망을 그리면서도 휴머노이드가 단기간에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진 않았다. 다만, 빠르면 2~3년 내에 휴머노이드를 위해 설계된 작업 공정 내에서는 일정 수준의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BMW 자동차 공장에서 피겨AI의 휴머노이드가 작업했던 것처럼, 자동차산업에서 물건을 옮기거나 조립하는 단순 반복 작업 등에는 부분적으로 도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의 로봇 기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이 대표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대략 3위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기술력과 시장 모두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일본은 과거 혼다의 아시모처럼 상징적인 휴머노이드를 선보이며 기술을 선도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련 연구나 제품화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반면 미국은 민간과 정부 차원에서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로 휴머노이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중국도 국가 주도로 수년 전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어오며 다양한 기업이 등장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휴머노이드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내 기업 간의 연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과 중국처럼 방대한 인력 풀과 자금, 노동 유연성을 갖춘 환경과 경쟁하려면 한국은 더욱 효율적인 방식으로 국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경쟁보다는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죠. 또 범용 휴머노이드보다는 자동차, 전자 등 한국의 산업 강점을 살린 특화형 모델에 집중해 빠르게 상용화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로봇 생태계의 체계적인 구축 또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반도체산업에서 불화수소를 국산화했던 사례처럼, 로봇 부품도 자체 생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중국의 경우, 특정 지역에 가면 모터만 생산하는 기업이 수백, 수천 곳에 달하지만, 한국은 로봇용 모터를 생산하는 기업이 극히 적고, 대부분 영세하거나 외산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며 “이처럼 부품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반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급하며, 그래야 외산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기술력만으로 빠르게 휴머노이드를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향후 로봇이 더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서 쓰이게 되면 인간과의 ‘공존’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안전 이슈는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은 피지컬 인터랙션(물리적 상호작용)에 특화된 센싱 기술입니다. 로봇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충돌이나 접촉이 발생할 수 있어 이를 감지하고 멈추거나 피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결국 앞으로는 사람과 로봇이 더욱 안전하게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정밀하고 신뢰성 높은 센싱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에이딘로보틱스의 경영 철학 역시 이러한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술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