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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8 16:13
  • 수정 2025.04.28 16:32
  • 호수 2025

주권 산업으로서의 휴머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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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LDEN AGE OF HUMANOIDS]

인터뷰③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머지않아 중국산 저가 로봇이 몰려올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산 휴머노이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주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에이로봇은 ‘가격 혁신’과 ‘현장 친화형 설계’로 제조업 현장에 실제로 투입 가능한 로봇을 만들고 있다. 에이로봇은 ‘우리가 잘해야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산업을 지킬 수 있다’는 책임감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5000만원대 휴머노이드 ‘앨리스’로 가격의 벽을 넘고, 기업 간(B2B) 시장 진입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최영재 기자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5000만원대 휴머노이드 ‘앨리스’로 가격의 벽을 넘고, 기업 간(B2B) 시장 진입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최영재 기자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처음엔 ‘기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미대를 졸업한 후 장신구 디자이너를 꿈꿨다. 하지만 남편 한재권 박사와의 인연으로 로봇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신혼이었지만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늦은 밤 그가 일하는 회사로 찾아갔다. 로봇을 설계 중이던 남편 옆에서 재미 삼아 스케치하고, 버려진 스티로폼으로 로봇 머리를 조각했다. 남다른 감각 덕에 곧 남편이 다녔던 회사의 로봇 디자이너로 채용됐고, 그렇게 시작된 우연은 운명이 됐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난 이미 서당 개 28년 차라서 풍월을 써도 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함께 근무했던 그들은 곧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남편 한 교수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 밑에서 로봇을 연구했고, 엄 대표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에서 키네틱아트를 공부했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 중에도 합을 맞춰 역사적인 로봇의 설계와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바로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였다.

“많은 분이 ‘찰리’를 데니스 홍 교수의 로봇으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실무는 대학원생이 많이들 맡잖아요. 설계와 제어는 남편인 한 박사가, 외형 디자인과 커버 제작은 제가 맡았죠. 이 얘기가 버지니아 공대 교지에도 실렸는데, 저희 둘 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로봇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휴머노이드 로봇 전문 스타트업이다. 로봇 디자이너인 아내 엄 대표가 최고경영자(CEO)를, 남편인 한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에이로봇은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앨리스’를 비롯해 바퀴 기반 서비스 로봇 ‘에이미’, 반려 로봇 ‘에디’ 등 세가지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주력 제품인 앨리스는 가격과 성능의 균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계된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18년 창업 당시 1세대 모델로 시작해 현재는 4세대까지 진화했다. 키 160㎝에 기본 무게는 41.6㎏, 배터리를 장착하면 약 46㎏으로 인간과 유사한 체형을 구현했다. 

휴머노이드, 가격의 벽을 넘다

엄 대표는 “앨리스는 철저히 현장 실사용을 전제로 설계된 휴머노이드”라고 소개하며 “특히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로봇 한 대에 2억, 3억씩 하면 그걸 어떻게 쓰겠습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자동차 한 대 값’이라는 가격 리미트를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원가절감 설계에 집중했어요. 최종 목표는 5000만원대였습니다.”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은 ‘액추에이터(구동기)’다. 일반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 기준으로 전체 비용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고가다. 이에 에이로봇은 2021년부터 하체에 적용할 리니어(선형) 방식 액추에이터를 자체 개발했고, 2024년부터 이를 앨리스에 탑재하고 있다.  

엄 대표는 “리니어 액추에이터는 기존의 회전식(로터리) 방식보다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하체 동작처럼 큰 힘이 필요한 작업에 적합하다”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 방식을 적용한 로봇은 테슬라의 옵티머스, 앱트로닉의 아폴로, 에이로봇의 앨리스까지 셋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앨리스의 판매가는 5000만원 중반대로 낮아졌다. 에이로봇은 여기에 인공지능(AI) 고도화와 작업 자동화 기술을 접목해 산업 현장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에이로봇이 1차 타깃으로 보는 분야는 제조업이다. 이 밖에 조선, 건설 등 인력이 부족하거나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현장도 포함된다.  

“조선업의 경우, 용접공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이라고 해요. 젊은 인력이 거의 유입되지 않다 보니 기업들은 여지없이 로봇 도입이나 외국인노동자 채용에 의존하고 있죠. 문제는 외국인노동자는 비자 기한이 있어 장기적으로 숙련공으로 키우기 어렵고, 협동 로봇은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해 결국 사람이 로봇을 세팅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작업 현장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현장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기존 생산 자동화 라인과 경쟁하려는게 아닙니다. 생산된 제품을 정리하고 포장하거나 원재료를 나르고 보충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하거든요. 우리가 진짜로 대체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 ‘부족한 사람’입니다.”

앨리스는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5에서도 공개됐다. 이 자리에선 LG유플러스의 AI ‘익시’가 탑재된 버전으로 선보였다. 앨리스는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퀴즈를 내고, 맞히면 생수병을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MWC 현장에서 앨리스가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 반까지 하루 종일 물을 전달하는 걸 보고, 많은 분이 ‘이건 사람이 하면 어깨 나간다’며 로봇의 내구성에 감탄했어요. 사실 이런 반복적인 일은 인간보다 로봇이 훨씬 잘해요. 이를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고 하죠.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로봇에게는 쉽고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앨리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엄 대표는 “앨리스(ELICE)는 ‘Artificial Learning Intelligence’에서 따온 약자”라고 소개하며 “사실 이 이름에는 개인적인 철학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로봇 업계는 아직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강하잖아요. 로봇의 디자인에도 남성 엔지니어들의 취향이 반영된 경우가 많고요. 저는 로봇 회사를 이끄는 여성 리더로서, 제품 디자인에서도 어느 정도 균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만든 로봇들의 이름은 대부분 여성형입니다. 다이애나(스키로봇), 에이미 모두 그렇죠. 예를 들어 ‘에이미(AIMY)’는 ‘AI meets you’ 또는 ‘AI meets your needs’의 줄임말이에요. 병원이나 호텔처럼 고객 응대가 중요한 서비스 현장을 타깃으로 한 로봇인데, 그런 영역에서는 여성형 디자인이 훨씬 더 효과적이거든요.”

에이로봇은 로봇축구대회인 ‘로보컵’ 대회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4년에는 3위를 했지만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술도전대회(테크니컬 챌린지)에서는 우승했다.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상황 판단, 전략 수립, 빠른 반응 등 복합적인 인지·제어 능력이 필요한 경기입니다. 이런 복잡한 기술을 로봇이 수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술 발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테크니컬 챌린지’ 부문에서 두 차례 우승했어요. 예를 들어 굴러오는 공을 정확하게 차서 골을 넣거나, 공을 띄워서 차는 등 고난도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건 정밀한 인식·제어·모델 경량화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해요. 그만큼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 자부합니다.”

최영재 기자
최영재 기자

기술의 윤리적 대응 필요성

다만, 로보컵이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경각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보컵은 단순한 로봇축구대회가 아닙니다. 진짜 목표는 2050년까지 인간 월드컵 우승 팀을 로봇 팀이 이기게 만드는 거예요. 이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를 향한 도전이죠. 이건 어떻게 보면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경계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이를 기반으로 로봇을 통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할 수 있어요. 그런 틀이 갖춰져야 비로소 로봇을 인간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휴머노이드 기술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엄 대표는 “휴머노이드는 종합예술”이라며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핵심을 꼽는다면 배터리, AI, 액추에이터를 들었다.  

“배터리는 자동차와 달리, 걷고 뛰고 하는 등 다양한 운동을 수행해야 하는 휴머노이드 특성상 방전 패턴과 충전 효율이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등의 기술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도 에이로봇은 교체형 배터리 방식 등으로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AI 역시 외부에서 공개된 모델을 활용하되, 로봇에 최적화된 형태로 튜닝해 적용 중입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인셉션’에 참여해 고성능 AI 솔루션도 실험하고 있습니다.”

에이로봇은 올해 5월 대만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AI 서밋에 공식 초청을 받아 앨리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엄 대표는 “올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CES 기조연설에 휴머노이드 로봇 14대가 함께 등장했지만 한국산 휴머노이드는 단 한 대도 없었다”며 “이번 전시에서 한국에도 뛰어난 팀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中 로봇 잠식 가능성 경계해야  

엄 대표는 최근 정부 주도의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을 언급하며, 이는 단순한 기술지원을 넘어 주권 산업 수호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산 로봇의 잠식 가능성을 경계하며, “지금이야말로 배터리, 반도체 등 기반 기술을 하나로 묶어 글로벌 경쟁에 나설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한국은 고령화, 인건비 상승, 제조업 기반이라는 세 가지 요인 덕분에 휴머노이드 상용화에 가장 적합한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엄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휴머노이드는 주권 산업”이라며 “한국이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 가지 핵심 기술(배터리, 액추에이터, AI)을 융합하고, 이끌어갈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대한 꾸준한 지원도 필수”라며 “향후 개발 방향에 대해서는 모방학습 기반의 AI 고도화와 현장 데이터를 통한 딥러닝 모델 개선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부연했다.  

에이로봇은 2024년 35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하나벤처스 주도로 진행됐으며 SGC파트너스, 가우스캐피탈매니지먼트 등이 참여했다. 현재는 시리즈 A 투자를 진행 중이다. 엄 대표는 “창업은 2018년에 했지만, 첫 투자는 6년 뒤인 2024년에서야 받았다”며 “창업 당시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투자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관심이 늘어나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이제는 정말 속도를 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로봇들이 이미 시장에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 철학에 대해 묻자 ‘로봇으로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엄 대표는 “에이로봇은 ‘A Robot’. 즉, 로봇 한 대에서 시작한다”며 “한 대의 로봇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삶을 돕겠다는 뜻이자,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인 ‘A Robot for All’의 핵심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로 사람의 삶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다.

“로보컵 같은 국제 무대에 참가할 때마다 항상 가슴에 회사 배지와 함께 태극기를 달고 나갑니다. 휴머노이드 어덜트 리그에 출전하는 국내 유일 팀이자, 실질적인 국가대표 팀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부터 한 박사와 함께 팀을 꾸려 출전해온 우리는 ‘우리가 잘해야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산업을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회사 모두가 공유하는 각오이자, 매일 입이 닳도록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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